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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웅박사교육칼럼] '성숙한 의식과 자기판단력'
기사입력: 2017/06/20 [11:53]  최종편집: ⓒ 경기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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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한 의식과 자기판단력"

 

                                                                                                                         이 철 웅

                                                         사단법인 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 교육학박사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성장과 성숙이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은 신체적으로 키가 커지거나 몸무게가 늘어나는 등의 양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뜻하며, ‘성숙’은 신체적인 변화 중에도 기기, 앉기, 서기 등과 같은 운동기능이라든가, 피부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변동되거나 눈동자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등의 감각기능과 내분비선의 변화에 의하여 생기는 신체기능이 유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이철웅 교육학 박사     ©경기인터넷뉴스

따라서 아기가 기거나, 앉기, 서기 등의 운동 기능을 할 수 있게 되고 눈동자를 전보다 활발히는 등의 움직일 수 있게 되며, 피부가 외부의 자극과 접할 때보다 민감하게 그 자극을 받아들이는 등의 감각기능의 변화는 곧 성숙이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발달은 아기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쁘거나 슬플 때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등의 심리적, 정신적 변화를 발달이라고 한다.


이를 더 설명하는 성숙주의 입장에서는 발달은 예견된 것이며 내적이고 유전적으로 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유아의 발달적 변화는 생리적 구조의 성숙과 자연적인 내부구조의 전개 결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유아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하여 유아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불필요한 성인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한편 그들의 요구나 흥미에 의해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흥미영역과 활동영역에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발적 의지에 의하여 성장한 이들이 그들이 경험 축적에 의한 자기판단력이 세워지며 이것이 개인 성장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확장되어 사회문화와 내지 민족문화, 국가문화의 기저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실을 비추어 보면 우리 사회의 발달 과정을 읽어 볼 수 있다고 본다. 분명 우리 사회는 발전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경제적 발전은 수치로 읽을 수 있어 전후 및 좌우의 비교가 가능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경제규모를 나타내는 국민총생산량의 지수가 중진국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나 수출 실적 등으로 그 나라의 경제적 발전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사회 문화적 발전상을 측정 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모호하다. 특히 인간성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발전상을 비교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학자들은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그 사회의 발전상황을 측정하거나 비교하는 형편이다. 현대 심리학이나 인문학의 주류는 인간성에 바탕을 둔 행복주의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행복을 국민들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반문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생태학적인 접근으로 본다면 다양한 가운데 살의 질의 향상에 그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비교적 짧은 시기 가운데 다양하고 어려운 과정을 걸쳐왔다고 본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민족 문화의 말살 정책을 몸으로 느껴야 했으며, 해방된 이 땅에 민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우리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은 시절도 경험해야 했었다. 그 가운데 우리 사회의 정의는 원칙보다는 현실 순응의 습관이 형성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현실적 적응을 잘한 이들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부를 누리는 현실을 가져왔으며, 독재나 억제 정치에 순응한 무리들이 그래도 평탄한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대적 몰가치 속에서 우리 후학들이 정체감을 잃어가고 이익 만능주의에 물들어 가도 그 처방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어쩌란 말인가?


순응주의자나 현실 타협주의자가 잘 사는 세상은 정의가 없는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것을 체감적으로 가르쳐 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물든 까닭에 그 구성원은 자기판단력이 제대로 발달될 수 없는 상황에 접어 든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사회적 상황을 보면 억지로 자기주장을 펴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기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자기 기분이 상하다고 고층노동자의 생명줄을 끊어 버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험악한 언어로 국민의 선동하는 무리들이 적지만 자기 몫을 찾아가는 현실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성숙한 자기 판단력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성숙한 의식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길이라는 다각적 판단이 설 때에 가능한 의식이다. 혼자서 잘 사는 의식은 퇴행된 의식이며 이를 사회적 병리라고 부른다.


이웃나라의 실정으로 보더러도 평화와 더불어 살고 싶다는 국민의식보다는 남을 미워하는 국민의식을 기르는 현실이다 이는 곧 역사 왜곡 현상을 보면 그 저류를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서비스센터를 우리나라에 세웠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제작한 승용차가 미국 고객만족도 1위를 했다는 뉴스를 함께 접하면서 우리에게 뿌리 깊은 사대의식 내지 열등의식이 이 속에 내재되어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자신을 귀히 여길 줄 모르는 이는 진정으로 성숙한 판단력을 가질 수 없다.


자신 국가의 생산품에 +α의 감정이 없으면 이는 정신적 열등주의의 소산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을 귀히 여기려면 억지의 주장과 막말에 동조하지 말기를 바란다.


선동에 놀아나는 국민은 성숙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아닌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안전 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더욱 굳건히 하는 길은 성숙한 국민의식 속에서 바른 자기판단력을 실천하는 마음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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